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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 잊혀질 듯 남아 있는 첫사랑의 설계도, 잃어버린 기억, 설계도, 기억의 습작

by moneycontent 2025. 4. 11.

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사진
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사진

1.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설계 –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짓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그 방식을 매우 섬세하고 세련되게 풀어낸 작품이다. 2012년 이영주 감독이 연출하고, 이제훈과 수지가 대학 시절의 주인공을, 엄태웅과 한가인이 현재의 인물을 맡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서사를 이끌어간다. 영화는 단지 멜로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해버린 것들과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서연(한가인)이 제주도에 집을 짓기 위해 건축사무소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대학 시절 첫사랑이었던 승민(엄태웅)을 다시 만나게 된다. 승민은 처음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지만, 이야기는 곧 15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로 넘어간다.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승민과 서연(이제훈, 수지)은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고, 서툰 마음들이 쌓여간다.

‘첫사랑’이라는 말은 익숙하고 흔하지만, [건축학개론]은 그 단어가 가진 무게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는 첫사랑을 **시간이라는 구조물 안에 설계된 감정의 집**으로 비유한다. 마치 건축을 설계하듯, 천천히 벽을 세우고 창을 내고 문을 여는 감정의 과정. 그 모든 것이 수업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며, 관객 역시 그 시절의 설렘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2. 말하지 못한 마음들 – 수지와 이제훈이 완성한 감정의 설계도

이 영화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다. 대학생 승민 역의 이제훈은 수줍고 내성적인 청년의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그는 서연에게 끌리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몇 번이고 망설이며 자신의 감정을 감춘다. 그의 말투, 시선, 행동 하나하나가 그 시절 많은 이들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서연 역의 수지는 반대로 솔직하고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승민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때로는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수지는 그 시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물 법한 ‘예쁘고 당당했던 첫사랑’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특히 그녀가 승민의 집에서 테이프를 같이 듣던 장면, ‘기억의 습작’을 흥얼거리던 장면 등은 이후 많은 이들의 **감성 코드**로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분명 호감을 느끼지만, 한 마디의 용기와 타이밍 부족으로 인해 결국 멀어진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 전달되지 못한 진심. 영화는 그런 미묘한 감정의 어긋남을 극적인 사건 없이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이는 현실 속 첫사랑의 전형이기도 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흐려지고, 멀어지고, 그래서 더 아련해지는 감정.

현재의 승민과 서연(엄태웅, 한가인)은 서로에게 묻지 못했던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마주한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있고, 이제는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때, 그들은 ‘지나갔지만 잊지 못한 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이란 감정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감성적으로 풀어낸다.

3. 기억의 습작 –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

영화의 제목 ‘건축학개론’은 단순히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과목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도 설계할 수 있는가**, **지어진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건축이라는 비유를 통해, 감정의 집도, 추억도, 사랑도 하나의 구조물처럼 설계되고, 그 설계가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영화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첫사랑의 아름다움만을 미화하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서 그 기억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승민은 과거의 감정을 마주하면서, 결국 현재를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서연 역시 과거를 정리하고, 진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이처럼 [건축학개론]은 기억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힘으로 연결해낸다.

영화의 마지막, 서연이 혼자 제주도의 집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장면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것은 완성된 건축물, 지나간 사랑,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살아가는 인생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기반에는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놓여 있었다.

[건축학개론]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시절 말하지 못했던 마음, 음악 한 곡, 같이 들었던 라디오, 첫 만남의 설렘. 이 영화는 그 모든 순간을 소중히 담아내며, 관객 각자의 ‘기억의 습작’을 꺼내게 만든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기억은 **내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해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