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 최후의 전장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치열한 방어전
2018년 개봉한 [안시성]은 한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안시성 전투’를 소재**로 한 사극 액션 영화다. 7세기, 당나라의 대군 50만 명이 고구려 안시성을 침략했지만, 양만춘 장군이 이끄는 5천의 수비군은 기적적인 방어로 이를 막아낸다.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는 한 편의 웅장한 전쟁 서사로 완성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645년.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이 고구려 정벌을 위해 5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오고, 고구려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안시성이다. 고립된 위치, 외부의 지원 없는 고독한 전투. 하지만 성주 양만춘(조인성)은 군사적 열세를 이겨내기 위한 전략과 결단으로 성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양만춘은 외부로부터의 명령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백성을 위한 선택**을 한다. 당 태종은 막대한 군량과 병력을 투입하며 ‘성벽을 허무는 거대 투석기’를 설치하는 등 총공세를 퍼붓지만, 안시성 사람들은 단결과 용기로 맞서 싸운다. 전투 장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더욱 극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구성된다. 특히 거대한 ‘혜자성’ 공성전, 말 갈라진 평원에서의 기병 전투 등은 스케일 면에서 기존 한국 사극에서는 보기 드문 수준이다.
[안시성]은 이처럼 전쟁 자체의 치열함뿐 아니라, **수세에 몰린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자존심**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나라를, 누군가는 가족을, 또 다른 이는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고구려 vs 당의 싸움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2. 조인성의 묵직한 존재감, 그리고 인물들의 합
영화의 중심에는 조인성이 연기한 안시성주 ‘양만춘’이 있다. 조인성은 기존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절제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무장한 장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화려한 언변이나 감정 과잉 없이도, 눈빛과 말투 하나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양만춘은 단순히 군사적 전략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지도자다. 그래서 그가 싸우는 이유에는 감동이 담긴다.
조인성 외에도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남주혁이 연기한 수장 ‘사물’은 초반엔 냉소적이고 실리적인 인물이지만, 점점 안시성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자신의 신념을 바꿔간다. 그의 성장은 **개인적 서사에서 공동체적 책임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설현이 맡은 백하 역시 흥미로운 캐릭터다.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전장에서 활약하는 전사이자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려진다. 전투 장면에서도 주체적으로 움직이며,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또한 박병은, 배성우, 엄태구, 정은채 등 조연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극의 밀도를 높이며 **'다 함께 지켜낸 전투'라는 주제**를 단단하게 만든다.
반면, 박성웅이 연기한 당 태종 이세민은 압도적인 권위와 냉정함을 보여준다. 전장을 ‘게임’처럼 대하는 그의 모습은 철저한 제국주의적 시선을 상징하며, 고구려를 그저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결국 그는 뜻하지 않은 저항과 전투에서 **가장 인간적인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장면은 전쟁에서의 승패를 넘어, **신념과 의지의 승리**가 무엇인지 깊은 울림을 준다.
3.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싸움 – 안시성이 남긴 유산
[안시성]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영화는 안시성을 단지 땅이나 성벽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곧 공동체이며, ‘우리’라는 정체성 그 자체다. 성주 양만춘부터 무명 병사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싸우는 장면은 고구려인의 투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대의나 복수 같은 거창한 명분보다, **'함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들의 눈빛과 선택에 집중함으로써 관객에게 더욱 깊은 몰입을 안겨준다.
비록 영화적 상상력이 개입된 부분도 많지만, [안시성]은 고구려의 위용을 스크린에 되살리며 **역사와 자긍심을 동시에 되새기게 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시대에도 통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수적, 무기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았던 안시성. 그 성을 지탱한 것은 튼튼한 벽이 아니라, **믿음과 연대, 그리고 공동의 목표**였다.
[안시성]은 화려한 전투만으로 평가받기보다는, 전쟁 속에서 피어난 사람들의 의지와 신념,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 속 마지막 외침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이 성을 절대 넘겨주지 않는다.”**